핵심요약
영화 수입사 찬란 이지혜 대표 <하> 영화로 그리는 찬란의 현재와 미래
찬란이 수입한 영화들. 각 배급사 제공
'잇 컴스 앳 나잇'부터 '유전' '미드소마' '악마와의 토크쇼' 등을 거쳐 '서브스턴스'까지 호러 장르 마니아들에게 '찬란'이란 이름은 기대를 뜻한다. 그러나 찬란에 호러만 있는 건 아니다.
'블링 링' '에덴: 로스트 인 뮤직' '환상의 마로나' '썸머 85' '그린 나이트' '패러렐 마더스' '클로즈' '당나귀 EO' '플랜 75' '사랑은 낙엽을 타고' '존 오브 인터레스트' '레드 룸스' 등 전 세계 영화계가 주목하며 평단과 관객이 사랑한 수많은 아트하우스 영화야말로 찬란에 '믿고 보는'이란 수식어를 안겨준 핵심이다.
지난해 찬란은 대작들조차 힘을 쓰지 못한 극장가에 파란을 일으켰다. '악마와의 토크쇼' '존 오브 인터레스트' 그리고 '서브스턴스'까지 10만 관객을 넘긴 세 편의 영화를 소개하며 유의미한 흥행 성과를 거뒀다. 특히나 어려운 아트하우스 시장에 찬란이 남긴 기록은 그 자체로 뜻깊다.
그런 만큼 찬란을 향한 관심과 주목도 커지고 있다. 관객들은 찬란이 또 어떤 '극장에서 볼만한 아트 영화'를 내놓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과연 찬란은 어떻게 '믿음'의 대명사가 됐을까. 찬란 이지혜 대표는 "관객과 같이 호흡하며 간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찬란이 수입한 영화들. 각 배급사 제공
눈높아진 관객…'신선하고 재밌는' 외화 찾아라
▷ '잇 컴스 앳 나잇'부터 '유전' '미드소마' '악마와의 토크쇼' 등은 물론 '서브스턴스'까지 찬란을 통해 해외에서 입소문 난 호러 영화를 자주 접하게 되는 것 같다. 찬란이 호러에 관심 두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찬란을 시작할 때는 진짜 예술영화만 했다. 한국에서 개봉했을 때 아무리 작아도 조금 더 정확한 타깃이 있는 마케팅과 홍보가 보이는 영화 위주로 선택했다. 그러다 2010년대 중반 예술영화 붐이 일면서 경쟁이 치열해졌다. 그러다 보니 시장은 호황이어도, 예술영화만으로는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을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예술영화와는 다른, 내 딴에는 상업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다가 호러를 눈여겨보게 됐다.
관객 트렌드를 이끌어 가는 건 2030 젊은 관객들이다. 호러는 특히 젊은 관객이 오니 나도 일부러 극장에서 가서 관객들을 살펴본다. 내가 생각했던 관객과 전혀 관객이 와 있기도 한다. 그렇게 배우고 느끼고 비슷한 지점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면서 계속 호러를 해왔다.
▷ 원래 호러 영화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나?
어릴 때는 호러도 많이 봤다. 한동안 안 보다가 다시 봐야 했을 때 진짜 억지로 봤다. 잘 못 봐서 해외에서도 스크리닝 들어가면 혼자 소리를 질렀다.(웃음) 이례로 '유전'을 2017년 가을에 미리 구매하고, 2018년 베를린에서 스크리닝했다. 보다가 혼자 외마디 비명을 질렀는데, 사람들이 웃었다. 난 너무 무서워서 입을 틀어막고 보다가 참다 참다 지른 건데….(웃음)
▷ 외화를 국내 관객들에게 선보이기 위해 선정하는 나름의 기준과 전략이 궁금하다. 다른 영화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호러 장르는 한국 관객이 스토리나 감정에 쉽게 동화되어 공감할 수 있느냐 하는 점도 중요할 듯하다.
신선하긴 해야 한다. 호러가 완전히 상업적으로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정확한 타깃층이 있고 항상 소비할 수 있는 장르다. 그렇기에 메이저 스튜디오에서도 호러가 때가 되면 나오고 있고, 어느 정도 성공 거두기에 관객들의 눈높이가 높은 편이다.
우리 같은 인디 배급사들은 흔하지 않은 소재와 신선함을 갖고 있고, 충격적이라 하더라도 스타일이건 스토리건 그동안 보지 못한 것들을 도드라지게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선보여야 관객분들이 어느 정도 선택을 해주는 거 같다.
찬란 이지혜 대표. 최영주 기자
영화 향한 관객 사랑 못 잊어 계속 걷게 되는 영화의 길
▷ 관객의 '선택'이라는 게 정말 영화를 개봉하기 전까지는 아무리 예측해도 알 수 없는 것 같다. 해외에서 흥행하고 작품성을 인정받아도 국내에서는 흥행이 저조한 경우도 많다.
어떤 건 내가 재밌게 봤어도 관객들에게는 내가 재밌게 본 지점이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호응이 있기도 한다. '미드소마'의 경우 내가 생각한 것보다 영화가 더 나간 지점이 있어서 개봉을 준비하면서 굉장히 많이 걱정했다. 관객 수도 우려한 대로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꾸준히 좋아하는 관객분들이 있었고, 많은 분이 오랫동안 찾아주시는 영화의 대명사가 됐다.
영화를 살 때 상황, 준비할 때 상황, 개봉할 때가 다 다르기에 영화는 위험 부담이 큰 업이긴 한 거 같다. 결국 우리가 받아들이는 폭과 관객이 받아들이는 폭이 다르기에 그 폭을 얼마나 좁혀가느냐가 중요하다. 또 이를 좁힐 수 있게 영화를 풀어주는 작업이 항상 필요하다. 그리고 그게 관객에게 얼마나 닿느냐 안 닿느냐가 영화가 선택을 받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관객과 같이 호흡하며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 그렇다면 관객들의 선택을 받았을 때 느끼는 감회는 더 남다를 것 같다. 이번 '서브스턴스'처럼 말이다.
처음 마케팅을 시작했을 때는 열심히 했지만, 흥행이 잘 안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게 되기에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감독 이누도 잇신, 2016)을 개봉하게 됐다. 그때 관객분들의 반응이 남달랐다. 작은 영화지만 장기 상영하고, 관객들이 계속 의견을 온라인에 남겼다. 그러면서 처음으로 재미를 느꼈다. 관객들이 영화를 어떻게 봐주는지 직접 몸으로 느낀 그 순간을 못 잊어서, 또 그런 영화를 만나고 싶어서 이 일을 계속하는 거 같다.
▷ '그린 나이트'나 '유전' '미드소마' '악마와의 토크쇼'도 그렇고, '서브스턴스'도 '소지섭의 영화'로 화제가 되고 있다. 심지어는 찬란 대표가 소지섭인 줄 아는 경우도 있다. 소지섭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이전 회사에서 소지섭씨와 '영화는 영화다'(감독 장훈, 2008)를 했었다. 그러면서 당시 소지섭씨 담당 매니지먼트 이사님과 알게 됐고, 지금의 51K와 인연이 됐다. 당시에도 소지섭씨는 '영화는 영화다'에도 투자를 하는 등 이런 쪽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이후 내가 찬란을 하면서 작은 외화도 해보고 싶다고 한 게 시작이었다.
이게 수익이 나는 일도 아닌데, 꾸준히 관심을 두고 한결같이 해줘서 많은 힘을 얻고 있다. 소지섭씨와 회사는 엄청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 부담스럽다며 나한테도 자꾸 언급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 사실 난 감사하다. '소지섭이 가져온 영화'라고 하면 완성도도 있고 좋은 영화라고 홍보가 되기도 하니까.(웃음) 정말 이렇게 꾸준히 한결같이 하는 건 쉬운 게 아니다.
찬란이 2025년 선보일 영화들. IMDb 제공
코로나 이후 변화한 영화 시장…열린 마음으로 '좋은 영화' 찾을 것
▷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관객들 사이에서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극장용 영화와 아닌 영화를 구분해 선택 관람하는 경우도 많다. 독립예술영화를 수입해오는 대표가 생각하는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 '극장용 영화'는 어떤 영화라고 생각하나?
일단은 완성도 자체가 좋아야 하는 건 맞다. '서브스턴스'나 '악마와의 토크쇼'처럼 재미가 있다거나 '존 오브 인터레스트'처럼 특별한 메시지에 영화적인 스타일이 극장에서 봐야만 최고치의 관람 경험을 안길 수 있는 작품에 관심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관객들이 작은 드라마에도 관심을 가져주셨지만, 이제는 극장까지 오기엔 극장 외에 볼 콘텐츠가 너무 많아서 작은 영화까지는 잘 안 보게 되는 것 같다. 지금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예전과 다른 기준으로 영화를 사게 된다.
영화가 좋지만, 개봉할 때 마케팅이나 홍보에 있어서 조금 쉽지 않다고 판단하면 예전보다 더 주저하게 된다. 부가 판권 쪽 상황이 많이 무너져서 극장에서 승부를 보지 않으면 안 되기에 우리 같은 회사들은 더 극장 개봉 위주로 고민하게 된다. 앞으로 시장이 어떨지 가늠이 안 되는 상황에서 올해는 어떨지 걱정이다.
▷ 예전처럼 어느 한 감독을 주목해서 작품을 준비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비슷하하다. 옛날과는 다른 환경에 여러 플랫폼까지 등장하면서 창작자들도 분산되고 있다. 보통 어떤 주목할 만한 감독이 나오면 다음, 그다음 작품을 주목하게 되는 건 맞는데, 창작자들이 영화에 국한돼 있지 않다 보니 옛날과는 작품이 나오는 순서나 기간이 다르다. 언제 차기작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지기에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됐다. 그러다 보니 우리도 미리미리 주목하기보다는 더 열린 마음으로 작품을 선택하게 됐다.
▷ 올해 찬란의 계획을 대략적으로나마 듣고 싶다.
지난해 14편을 극장 개봉했는데, 올해도 비슷하게 할 거 같다. 무사히 다 개봉시키면 좋겠다. 그중 소마이 신지 감독의 '이사'(1993)와 실황 콘서트 영화의 정석 같은 영화인 조나단 드미 감독의 '스톱 메이킹 센스'(1984)도 있다. 둘 다 처음으로 국내 정식 개봉하는 작품이다. 이처럼 다양하게 해보려 한다.
▷ 올해는 호러 영화는 없나?
'프레젠스'라고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이 연출하고, 미국에서 네온이 배급한 영화가 있다. 영화는 아주 깔끔하고 흥미롭다. 이 작품도 기대하고 있다.
▷ 찬란이 가고자 하는 궁극적인 길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찬란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열심히 좋고, 신선하고, 흥미로운 영화를 사는 일을 할 거다. 지난해 결과들이 나한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계속해서 노력하려고 한다.
<부록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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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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